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하며, 원래는 만의사(萬義寺)라고 하였다. 1284년(충렬왕 10)을 전후하여 주지 정길(貞吉)과 현묵(玄默) 등이 중창하였다.
조선시대의 뚜렷한 역사는 전하지 않으나 사명당 유정(惟政)의 제자 선화(禪華)가 오랫동안 주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. 그 뒤 우암 송시열(宋時烈) 묘의 이장지로 선정됨에 따라 1669년(현종 10) 현 위치로 옮긴 뒤 절 이름을 만의사라 하였다.
1796년(정조 20) 수원성곽이 중수되자 팔달문에 만의사의 종을 옮겨 달았다. 이 종은 1080년(문종 34)에 주조된 뒤 1687년(숙종 13)에 만의사 주지 성운이 무게 700근으로 개주(改鑄)한 것이다. 현재 정면 3칸의 대웅전과 산신각·요사채 등이 남아 있다.
[출처: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(만의사(萬儀寺))]
무봉산 기슭에 자리잡은 만의사는 원래 화성시 동탄면 신리에 있던 신라시대 이래의 고찰이었으나, 1669년(현종 10)에 그 곳이 우암 송시열선생의 묘자리가 되면서 절을 중리의 현 위치로 옮겨가게 되었다고 한다. [네이버 지식백과] 만의사(화성) (대한민국 구석구석, 한국관광공사)